신문 지면에 크게 나오지 않았지만 콜트악기 김영희, 조규옥 조합원 두 분의 가볍지 않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12일 정리해고 발표 당시, 김영희 조합원은 5월 31일, 조규옥 조합원은 7월 31일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콜트악기 자본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분까지 정리해고했습니다. 다른 정년퇴직자들은 *발 욕하면서 끝냈지만 두 분은 ‘억울하다’며 희망 퇴직을 하지 않고 정리해고자로 함께 투쟁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김영희 조합원은 약 3백만 원, 조규옥 조합원은 약 7백만 원의 임금 청구 소액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승소를 하고 가볍게 끝날 줄 알았던 소액 재판이었지만 수전노 자본인 콜트(주)는 이 작은 금액도 반만 받고 합의를 보자는 안을 내놨습니다. 두 분 아줌마 조합원은 명예스럽게 정년퇴직 못 한 것도 억울한데 임금의 반을 잘라 합의하자는 말에 분노했습니다.
인천지방법원은 원고, 피고의 답변을 듣고 대법원 판결로 추정한다고 했습니다. 2012년 2월 23일 대법원 판결 후 3월 27일, 재판이 다시 열렸습니다. 판사가 “대법에서 승소를 했으니 회사는 이유 있냐?”고 물어 보았고 회사는 대법원 판결로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판사는 두 분의 아줌마 조합원에게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했다, 하지만 이자를 20퍼센트로 적용하느냐 5퍼센트로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지급을 안 하는 일이 생겨 강제적 조치로 20퍼센트 이자율을 만들었다, 1~3심 다 이겼으면 20퍼센트를 적용시키는 게 문제가 안 되는데 1심에서 기각되었다, 그러니 10퍼센트로 퉁 치자고 했습니다.
판사님 말씀에 우리 아줌마 조합원은 항의했습니다.
“판사님, 퉁 치자는 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회사한테 도움이 안 돼 잘렸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회사를 위해서 20년간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사장님이 이 회사는 여러분들 것이라고 말해 정말로 좋은 사장님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명예스럽게 퇴직하려면 몇 년도 남지 않은 기간임에도 정리해고를 시키고, 얼마 되지 않은 임금, 고생했다고 주지 못할망정 반으로 깎아 합의를 보자는 회사의 말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무슨 이런 놈의 회사가 다 있냐’는 심정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대법 판결이 나올 때 다시 재판을 열자고 추정했는데 회사가 질질 끌었던 이유는 얼마 안 되는 금액 우리가 포기할 줄 알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판사님은 우리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임금과 이자 10퍼센트로 퉁 치자’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항의 발언에 판사는 좌불안석이었습니다. 판사도 검사도 모르고 법이라는 것도 모르는 아줌마 조합원을 법정에 서게 한 것이 콜트 자본이었습니다. 한 해 100억 원씩 돈을 버는 회사가 얼마 안 되는 임금도 반으로 깎자 합니다. 천민 자본, 수전노 자본 콜트•콜텍입니다.
뒤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판사 앞에서 저렇게 큰소리치는 조합원이 놀랍기보다 답답해 보였습니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사는 “제 말뜻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5퍼센트로 적용시켜도 되지만 아줌마가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여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의견을 물어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회사 측 변호사에게 “12퍼센트로 받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희용 이사는 “예” 하고 순순히 대답을 하였습니다.
판사 앞에서는 콜트(주) 이사도 겁을 먹는데 우리 아줌마 조합원은 무슨 용기를 가지고 그랬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법원 문을 나서며 아줌마 조합원들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규옥 여사! 시원했어요. 전 쫄아서 못 하는데 판사에게 큰소리치는 것은 우리 아줌마뿐일 거예요”라는 저의 말에 “응? 판사가 그렇게 높은 사람이야! 몰랐네~. 그런데 억울하니까,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니까 자연히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랍니다.
5퍼센트로 판결하면 어떡하려고,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했냐는 말에는 “다 지회장님한테 배워서 그런 거다. 잘못이 없는데 왜 우리가 말을 못 해? 5퍼센트를 받아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우리의 억울한 마음을 얘기할 수 있겠어? 높은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우리처럼 몇 개월 안 남은 사람들이 명예스럽게 정년퇴직 할 수 있지 않겠어?” 그 대답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 밑바닥 인생이라지만 훌륭합니다.
잠시 옛 어르신네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가난하다 해도 자신을 천하거나 귀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 못난 지회장을 믿고 따라와 준 조합원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조합원들을 원망했던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두 분의 조합원과 헤어지면서 지나온 세월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힘들고 어려워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방황했던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 판사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투쟁을 시작한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억울하기 때문에, 다시는 우리와 같은 노동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6년이라는 긴 세월을 싸웠습니다.
며칠 후 조합원이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며 판결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판결문에는 “피고는 원고 조규옥에게 10,500,000원을, 김영희에게 4,950,000원을 2012. 5. 15.까지 지급한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고생하셨다는 말에 다 지회장님 덕분랍니다. 판사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던 조합원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니 박영호 사장이 떠올랐습니다. ‘가진 것 조금만 베풀어도 저렇게 좋아할 분들인데 박영호 사장의 욕심은 만족시킬 만한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채우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 봅니다.
누님! 수고하셨어요. 대법원 판결문을 드릴 테니 함께 보관하며 아들, 딸에게 자랑하세요.
‘늙은 엄마 노동자가 높고 잘난 놈들에게 이겼다. 아들, 딸들아. 이 엄마는 가난하고 못 배워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여성 노동자다.’
